오늘은 처음 부모가 되었을때 느꼈던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들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꽤 준비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육아서도 여러 권 읽었고, 주변에서 들은 조언도 메모해 두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내 품에 안기는 순간, 그동안 쌓아왔던 준비는 놀랄 만큼 무력해졌다. 육아는 지식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그 현실은 늘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들은 지금 돌아보면 웃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시험 같았다.
울음 앞에서 멈춰버린 시간
아이의 울음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배고플 때, 졸릴 때, 기저귀가 불편할 때, 혹은 이유 없이 울 때까지. 울음의 종류가 다르다고들 했지만, 초보 부모에게 그 울음은 모두 같은 소리로 들렸다. 밤중에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시계 초침 소리마저 크게 느껴졌고, ‘왜 우는 걸까’라는 질문은 곧 ‘내가 뭘 잘못한 걸까’라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안아보고, 흔들어보고, 젖을 물리고, 노래를 불러보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울음이 멈추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느꼈던 무력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부모가 되었는데, 내 아이 하나 달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의 울음은 부모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울음에 반응하고 함께 시간을 버텨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많은 밤을 지나야 했다.
모든 선택이 정답 같지 않았던 날들
육아를 시작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분유를 먹일지 모유를 먹일지, 바로 안아줄지 조금 기다려볼지, 재울 때 안고 재울지 눕혀서 재울지. 사소해 보이는 결정 하나하나가 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것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건 틀렸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할수록 정보는 늘어났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다른 집 아이는 벌써 뒤집기를 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왜 아직일까. 남들보다 늦은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시기에는 아이보다 나 자신을 더 의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선택과 후회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고, 대신 ‘우리 아이에게 맞는 답’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 답은 책이나 검색창이 아니라, 아이를 매일 바라보고 느끼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완벽한 부모를 내려놓고 나서야 보인 것들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 나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실수하지 않는 부모,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부모, 아이에게 늘 최선의 선택을 해주는 부모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준은 곧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잠을 못 자서 예민해진 날에는 작은 일에도 스스로를 책망했고, 웃어주지 못한 날에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바라본 적이 있다. 아이는 그저 내 품에서 숨 쉬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이대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오늘 최선을 다하지 못했어도 부모는 계속 부모로 남는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다. 인내심이 얼마나 부족한지, 감정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안아줄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당황스럽고 힘들었던 순간들은 결국 부모로서 한 단계 성장하게 만든 계단이 되어 있었다.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분명한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완벽한 부모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을 필요로 할 뿐이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